인지 3

동일성 - 무서운 부작용
📚 Series: 인지를 이해하는 길 3

동일성

<나는 인지과학자가 아니고 뇌과학자도 아니다.>
다만 AI를 연구하는 과학자이고 이 글은 AI에 빗대어 사람의 인식을 분석한 것이다.

우리 뇌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은 뉴런의 활성화이다. 이전 글 [인지1, 인지2]에서 이 단순한 명제로부터 상상력을 키우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면 , 이 글에서는 좀더 무서운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우리는 서로 다른 사물을 실제로는 같게 보고 있다. 왜냐하면 동일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예시로 아래 그림을 인식해보자.

오리들의 움직임을 부드럽게 이어놨기 때문에, 다섯 마리의 오리는 같은 것으로 인식된다.
그런데, 다섯 마리의 오리가 서로 다른 존재일 가능성이 있다.

오리의 예시에서 다섯마리를 모두 동일한 객체로 인식되는 것은 우리 뇌에서 활성화되는 뉴런이 모두 같기 때문이다 사실 정확히 같은 뉴런이 활성화되었다고 확실할 수는 없다. 그러나, 딥러닝에서 다른 형태의 객체들을 동일한 값으로 활성화하는 경우, 인식된 값은 동일하다. . 물론 추가적인 사고로 여러 모습들을 다른 것으로 의도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 오리들의 서로 다른 특징을 발견한다면 두 오리는 다르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관찰로부터 서로 다른 특징을 대조적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만일 대조적인 정보를 인식하지 못하고, 같은 인식만 발생한다면 모두 같은 객체인 것이다. 또한 뇌의 뉴런은 각자의 역할을 지니고 있어서, 사람마다 대조의 능력이 다를 수 있고, 능력이 부족하다면 서로 다른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사이코패스는 안와피질에서 측두엽을 거쳐 변연계 부분의 저기능이 나타나는데 책: 사이코패스 뇌과학자 참고., 사이코패스라면 공감능력이 떨어지며 슬픔에 대해서 평소 상태와 다르다는 점을 변연계에서 인지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니 두 객체를 다르게 보는 것은 개인의 능력이고, 다른 점을 인식하지 않는다면 두 객체는 동일하게 인식된다. 오리 그림의 경우, 다음과 같이 색깔을 칠해둔다면, 보통의 경우 두 마리의 오리, 노란색 오리와 갈색오리가 움직인 경로를 생각하는게 일반적인 인식일 것이다.

물론 이러한 상황에서도 추가적인 정보가 주어진다면, 다시 두 객체는 동일한 객체로 인식될 수 있다. 오리가 흙탕물에 들어간 경우라면 말이다. 이 경우 색깔이 변화하는 오리 한 마리로 인식될 가능성이 높다. 열 마리의 오리가 우리 뇌에서 동일하게 인식되는 것이다.

이 인지 실험은 추가적인 정보가 주어지는 경우 뇌가 다른 객체를 동일하게 볼게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어쩌면 그림은 애니메이션을 표현했으니, 객체들을 동일하게 인식하는 게 당연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주장하는 바는 우리가 일상에서 인식하는 모든 것들은 일부 동일성을 지니고 있으며, 서로 다른 실체가 있는 객체일지라도 동일하게 인식한다는 것이다.

한 번쯤 공원을 산책하다가 강아지를 만난 적이 있을 것이다. 수많은 강아지들을 마주쳤지만, 우리가 인식한 강아지들은 모두 “강아지”라는 동물로서 인식된다. 물론 주인이나 목줄이 특이 했다면, 이를 바탕으로 서로 다른 강아지로 기억속에 남아있을 수 있지만, 결국 모두 강아지라는 추상적인 정보로써 머릿속에 남고 기억된다. 마찬가지로 당시 인식될 때도 “강아지”라는 정보 및 추가적인 (외모, 옷, 크기, 색깔) 등 정보가 인식된다. 인식된 정보 중에서 가장 빨리 사라지는 것은 특색이 없거나 복잡한 정보들 (털에 묻은 얼룩, 윤기의 정보) 같은 정보일 것이다 반대로 오래 기억하기 위해서는 되도록 특이한 정보여야 하는데, 예를 들어서 헐크가 타고 다니는 도베르만을 상상한다면 잊어버리기 힘들다. - *책: 1년 만에 기억력 천재가 된 남자 - 조슈아 포어* . 그렇다면, 차이점으로 인식된 정보들이 사라지고 강아지라는 기억만 남는다면, 서로 다른 강아지들은 모두 같은 방식으로 인식되는 게 아닐까?

인지동일성

나의 인식에 대한 주장은 다음과 같다.

만일 두 강아지를 봤을 때, 인식이 동일하다면 두 강아지는 같다.

나는 이 말이 틀렸다는 것을 안다. 실제로 두 강아지는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뇌에서 처리된 정보가 모두 동일하다면, 그 강아지는 나에게 같다는 의미다. 공원에서 만났던 수많은 강아지들은 공간적, 시간적 정보가 없이 강아지라는 정보만 남아있다면, 내가 만났던 강아지들은 모두 같다. 주장을 좀더 수정하면 다음과 같이 쓸 수 있을 것이다.

만일 두 강아지를 봤을 때, 인식이 동일하다면 두 강아지는 나에게 같다.

서로 다른 객체를 동일하게 인식하는 것을 “인지 동일성” 이라고 표현하자 난 AI 과학자고 인지 과학자는 아니다. 그러니, 이 단어는 내가 만든 단어로 인지과학의 용어가 아닐 것이다. . 인지동일성은 단순히 강아지에 대해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 우리 일상의 많은 인지적 상황들에서 나타난다. 인지동일성은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서 뇌가 동일한 방식으로 인식하는 것을 나타내며, 대부분의 행위는 동일한 뉴런의 활성화를 자극할 수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경우와 다른 글을 읽고 있을지라도 인지동일성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동일성 찾아내는 것을 AI에서는 패턴인식 (Pattern Recognition) 이라고 부르며, 서로 다른 입력을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을 불변성 (Invariant) 이라고 한다. 인간은 수 많은 정보들에 대해서 서로 각기 다르게 처리하기보다 공통점을 찾아내는 효율적인 정보처리 방식을 택하였고, 이로부터 두 사물을 동일하게 인식하는 인지동일성이 나타난다. 효율적인 정보처리 방법이지만, 인식으로써 입력된 정보 처리 방식은 뉴런의 두 가지 특징으로 인해서 부작용을 만들어낸다.

장기기억과 연쇄작용

장기기억은 과거에 있었던 인식을 미래에도 계속 유지해주는 특징이고, 연쇄작용은 뉴런들간의 연결 및 연쇄적인 활성화 과정이다. 초등학교 때 어떤 친구들이 있었는지 기억해내는 것과 친구들과 놀았던 놀이를 상상하는 게 가능한 이유는 이 두 가지 특징으로 인해서 가능하다.

지나가다가 초등학생을 보면, 과거 초등학생으로 인식했던 것과 똑같이 초등학생 뉴런이 활성화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과거 친구들과 있었던 사건들을 회상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회상이 반드시 좋은 경험만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린시절 겪었을 안 좋은 추억들도 연달아서 활성화 된다. 분명 과거 친구로서 존재했던 초등학생과 지금 본 학생은 다른 실체이지만, 우리가 인식하는 방식은 동일한 초등학생이기 때문이다. 결국 장기기억에 연결된 초등학생 추상화는 동일하기 떄문에 우리는 좋든 싫든 과거의 기억이 떠올려질 것이다.

부정적인 생각은 꼬리가 길다. 점점 더 안 좋은 생각이 들고 기분도 연달아서 우울해진다. 그러나 이에 대한 책임은 나한테 있다. 적어도 내 뇌한테 있다. 내가 부정적인 것들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생각이 떠올랐을지라도 우리 뇌는 결코 편향적이지 않아서 다양한 생각들이 약하게 무의식 속에 활성화 되고 있다. 인간의 뇌에 뉴런이 600억개가 있고, 그들의 연결로 7조개의 시냅스가 생겨난다. 그 중에서 부정적인 꼬리를 무는 뉴런들의 활성화를 바라본 것은 본인의 책임이다는 것이다.

부정적 꼬리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결국 다른 뉴런들의 활성화를 바라보는 것. 바꿔말하면 내가 인식할 수 있는 대상은 훨씬 많고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생각을 할지에 대해서 인간은 어느정도 자율성이 있기 때문이다.

결론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것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인식한다면, 결국 개인이 어떤식으로 인식을 형성하는지에 따라서, 얼마나 풍부한 인식들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서 세계를 해석 데미안 - 헤르만헤세 하는 방식은 달라질 것이다. 매일같이 새로운 인식들을 늘리고 기존의 인식이 잘못된 것이 아닌지 확인하는 과정은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것 같다.

세계는 너무 복잡하고, 인간은 본인의 방식으로 세계를 인식한다.
무슨 모양을 만들지는 스스로 정하는 거겠지.